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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생각

에어컨 실외기 때문에 생긴 일

집에서 사용하던 에어컨이 어느덧 20살이라는 나이를 먹어 이번 기회에 바꾸기로 했다. 벌써부터 더워지고 있는 날씨 때문에 에어컨 예약이 꽤나 밀려있는 눈치였지만, 다행히도 신청한지 오래되지 않아 설치기사님이 방문해주셨다. 그러나 사건이 터져 설치는 완료되지 못했고, 에어컨을 돌리는 날은 며칠 미뤄지게 되었다.

우선 집의 구조에 대해서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우리집은 3층 규모의 빌라인데, 그동안은 실외기를 옥상까지 올려서 사용하고 있었다. 2층에서 옥상까지 올리려니 당연히 비용적인 문제가 발생할 수 밖에 없었고, 거리로 보나 설치하는 과정으로 보나 꽤나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1층과 2층 계단 사이 외벽에는 조그마한 테라스 같은 공간이 있었는데, 보통 1층의 실외기를 놓는 공간이었지만 한쪽이 비어있었던 것이다. 할머니는 그동안 이 집에 오래 살아왔고(6년 차) 마침 그 공간이 비어있었기 때문에 설치기사님에게 그곳에 우리 실외기를 두어도 된다고 했다.

약간 찜찜했던 일은 역시 하면 안 되는 것이다… 옥상에 있던 실외기를 철거하고 테라스에 새 실외기를 올릴 때쯤, 1층에 작년에 이사온 사람이 당황스러워 하며 올라왔다. 자기네들도 에어컨을 주문해놓은 상태인데, 2층에서 그곳에 실외기를 두면 자기네들이 둘 곳이 없어진다는 것. 할머니는 어차피 공동공간인데다가 한참 비어있었고, 당신이 여기 오래 사셨기 때문에 우선권이 있다는 주장을 펼쳤고, 1층 사람은 작년 여름이 끝나갈 때 이사를 왔기 때문에 그동안은 에어컨을 설치할 필요가 없었으며, 그 공간은 자기들이 이사오기 전부터 1층에서 실외기를 둬왔던 공간이었는데 2층에서 왜 원래 있던 위치에 설치를 하지 않았느냐 라는 주장으로 맞섰다. 서로의 입장차이가 약간의 감정싸움이 되면서 소리가 점점 커졌고, 결국 설치가 중단되는 사태까지 이르렀다. 일단 현재 시점에서 가능한 기술적인, 경제적인 대안들을 생각해보고 다시 풀어가기로 하고 서로의 주말을 되찾을 수 있었다.

왜 이렇게 됐을까. 우리가 그곳에 실외기를 두겠다는 결정을 하기 전에 서로 교류가 있었다면 사전에 문제를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 바로 위아래 집인데도 그동안 너무 교류가 없었던 현대사회의 단절에 대해 한 번 생각을 해보게 된다.

이런 공동공간에 대해서 어떻게 합의가 되는지도 사실 궁금한 부분이 있다. 테라스의 위치는 에어컨 실외기를 두기 좋아서 설치비가 작게 나오는 이점이 있는데, 그 이점을 1층만 누릴 수 있는건지. 그동안 관례적으로 1층이 써오던 부분을 바꿀 수 없는건지, 상대적으로 설치비가 제일 많이 나올 수 밖에 없는 2층이 그 모든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건지.

서로 얼굴을 잠시 붉힌 주말이었지만, 결국 우리의 실외기를 다시 옥상으로 올리는 쪽으로 결론을 낼 것 같다. 원래 나올 비용에 설치기사 분들이 재방문을 함으로써 생기는 추가적인 비용까지 합치면 생각보다 많이 나올 것 같지만(일정 부분은 1층에서 부담을 해줄지도 모르겠다), 어차피 같은 건물에서 살아가는 사이라면,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돈으로 푸는 것이 제일 깔끔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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