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근황의 제일 큰 키워드는 ‘이사’다. 10월말에는 수지집을 정리하고 할머니를 야탑으로 모셨고, 1월말에는 그동안 지냈던 성수동을 떠나 새로운 곳을 찾아야 한다. 이사를 한 번 하는 것도 꽤나 고된 일인데, 연속으로 두 번이나 하려니 정신도 없고 마음이 조급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간의 히스토리나 한 번 정리해본다.
수지집
그동안 오래 살았던 잠실, 송파구를 떠나 수지로 이사한 건 2019년의 일이다. 당시 살던 전세집의 주인이 바뀌면서, 계약기간이 만료된 뒤 이사를 가야하는 상황이었다. 당시 전세집의 보증금은 나와 동생이 지불한 상황이었고, 구성원은 할머니와 나, 동생, 그리고 반려견 1마리였다.
처음에는 할머니도 삶의 터전이 바뀌는게 힘든 일일거라고 생각했고, 나도 여전히 테헤란로로 출퇴근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송파구에 머무르는 선택을 하려고 했다. 하지만 당시 보증금으로 갈 수 있는 집의 컨디션은 썩 훌륭하지 않았고, 할머니를 위해 저층 혹은 엘리베이터가 있는 곳을 찾으면서도 반려견이 허용 가능한 곳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한참을 부동산 투어를 다니다가, 동생이 그냥 수지쪽으로 가면 집을 살 수 있다면서 한 번 가보자고 했다. 모두에게 생소한 동네이긴 했는데, 판교 접근성이 좋았고 IT 직장인들이 판교로 많이 다니는 상황이었기에, 나의 다음 직장은 판교이겠거니 하면서 수지를 좀 더 유심히 들여다 보았다.
송파구의 전세 보증금보다 조금 더 주면 구축 아파트를 매매할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 생각보다 크지 않은 가격차이로 신축 아파트 매매가가 형성되어 있어서 차라리 조금 더 대출을 일으키고 신축 입주권을 매매하는 쪽으로 결정하게 되었다. 첫 집으로 신축 아파트에 입주하는 경험을 쌓을 수 있었던 건 지금 생각해봐도 좋은 경험이었던 것 같다. 앞에 광교산을 끼고 있어서 경치도 매우 훌륭했고.
흩어지다
다같이 수지에서의 삶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몇 개월 지나지 않아 동생은 결혼하면서 분가를 하게 된다. 남은 것은 할머니와 나, 강아지.
꽤나 강성한 할머니와의 1:1 매칭은 꽤나 스트레스 받는 일이었다. 그동안은 동생이 그 짐을 나누어 지고 있었음을 깨달으면서, 조금씩 독립의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 사고가 하나 발생한다. 여느 때처럼 축구를 나갔다가 상대방 선수랑 크게 부딪혔었는데, 단순 타박으로 생각하고 30-40분 정도를 계속 뛰다가 그만, 무릎에서 안 좋은 신호를 받은 것이다. 다음날, 아무리 생각해도 상태가 심상치 않아서 병원에 갔더니 후방십자인대 파일이라고…
벌어진 일을 어찌하리. 재건수술을 받고, 재활치료를 위해 당분간 근처에 숙소를 잡아서 왔다갔다 하기로 했다. 그렇게 나름의 첫 독립(?) 생활이 시작되었다.
너어어어무 좋아!!!!!!
왜 진작에 나오지 않았을까. 부모가 자녀를 양육하는데 있어 진정한 마무리는, 그 자녀를 독립시키는 것이라는 오은영 박사의 말에 백번천번이고 머리가 끄덕여졌다.
성수동
그렇게 심어진 독립의 꿈은 조금씩 구체적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독립의 맛을 알아버렸기에, 독립해야겠다는 생각이 첫 번째. 그리고 아버지들이 계신데 왜 내가 계속 할머니를 모시고 있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두 번째였다. 할머니가 그동안 나와 동생을 엄마처럼 잘 키워주신 것은 맞지만, 그럼에도 내가 온전히 할머니 부양의 짐을 모두 지는 것이 합당한가를 생각해보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에.
일단 독립을 위해 여러모로 알아보았다. 가격대가 다 예사롭지 않아서 굳이 이 돈을 주고 가는 것이 맞는가?란 생각이 많이 들었다. 그러던 중에 엄마가 성수동에 전세 준 집이 있는데, 차라리 거기로 가면 어떻느냐는 얘기가 나왔다.
서로 win-win하는 선택이다. 딜.
그리고 슬금슬금 아버지들에게 수지집을 정리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조금씩 흘리기 시작했다.
현재
일단 수지집을 내놓았다. 그래야 뭐라도 진행될 것 같았기에. 겨울부터 내놓았는데 부동산 경기가 왔다갔다 하면서 매수문의가 많지는 않았다. 그러다 여름이 지나면서 조금씩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했다. 결국 매수자가 나타나서 거래는 진행되었는데, 어쨌거나 나의 첫 집이었고 다같이 모여살았던 기억들이 지나가면서 마지막 날에는 뭔가 짠 하더라.
아버지들에게도 상황을 공유했다. 할머니를 위한 거처에 대한 예산을 말씀 드렸고, 아버지 세 분이 50% 정도 해주시면, 내가 나머지 50%를 하겠다는 계획으로 진행했다(이것도 사실 내가 많이 양보하긴 했지). 그런데 결국 이런저런 상황을 거쳐 아버지들이 40%, 내가 60%를 부담한 상황으로 할머니를 새로운 곳에 모실 수 있었다(후우).
그러고 났더니 이제 성수동에서의 삶도 3개월 남짓 남게 된 것이다.
계획
회사를 계속 테헤란로 쪽으로 다니게 되면서, 여전히 이쪽 접근성을 위주로 집을 알아보고 있다. 여자친구도 같은 지역으로 다니기 때문에 서로 편한 상황. 부담이 전혀 없는 가격대로 갈 것인지, 조금은 대출을 안고서라도 컨디션이 더 좋은 선택을 할지가 고민의 포인트이긴 하다. 부담이 0인 것보다는 감당할 만큼의 레버리지를 일으켜서 가는게 더 낫지 않을까?란게 지금의 생각.
주말 동안 열심히 임장도 다니고 하면서 결정을 슬 해야겠다. 다 지나고 나면 새로운 챕터로 들어가는 기분이 들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