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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생각

스콜의 마지막

여러분, 가능한 빨리 퇴사해 주십시오.

2020년 2월 5일, 모든 직원들을 회의실에 모은 뒤 꺼낸 대표님의 첫 마디였다. 이 날 우리 회사는 폐업을 결정했음을 모두에게 알렸다.

회사에서의 나의 위치 덕분에, 돌아가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은 1월 설 연휴 전부터 알 수 있었다. 한창 바쁘게 돌아가야 할 신작 프로젝트가 지지부진 해지고, 결정은 미뤄졌다. 설 연휴 때 급작스럽게 마련된 술 자리에서는 우리 회사가 처한 현실과 거기서 선택할 수 있는 미래들을 엿볼 수 있었다. 경영진은 애쓰고 있었고, 직원들에겐 말할 수 없었다. 무언가 결정날 때까지 마냥 기다릴 수 밖에 없었고, 꽤 고통스러운 시간들을 애써 흘려 보냈다.

그렇게 많은 경우의 수가 머리 속을 오가고, 서로가 생각하는 미래가 메일로 오간 뒤에 내려진 결론이 폐업이었다. 분위기는 넌지시 공유가 되었으나, 막상 폐업으로 결정된 현실이 대표님의 입을 통해 회의실에 들이닥치자 모두가 얼어 붙은 기분이 들었다. 경영진들은 최선을 다해 퇴직금을 지급할 것이고, 더불어 그동안 함께 고생해준 것에 대한 감사의 의미로 위로금도 지급될 것이라고 안내가 된 뒤에야 조금은 안심하는 분위기가 되었다. 실업급여와 퇴직금, 위로금이면 몇 개월 동안은 경제 활동 없이도 여유 있게 미래를 준비할 수 있는 기간일테니.

나도 이 회사에서만 5년을 넘게 있었다. 그동안은 2년 마다 병특이 끝나서, 조직개편으로, 더 성장하고 싶어서 회사를 옮겼는데, 한 곳에서만 이처럼 오래 있었던 것도 처음이었다. 함께 했던 사람들이 좋았고, 내가 성장한다는 느낌을 받았고, 대우도 만족스러웠다. 생각해 본 적 없는 분야에 발을 담궜음에도 이 회사였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 같다. 더 가고 싶었지만 그렇지 못했던 현실은 얘기하다보면 격해질거 같으니 자제.

그렇게 3월 5일, 마지막 출근을 마쳤다. 내가 이 회사에 올 때 예전에 함께 했던 사람들과 다시 뭉쳤던 것처럼, 이 회사에서 흩어진 사람들이 다시 뭉쳐서 뭔가를 할 수 있는 날이 또 오지 않을까 기대하게 된다. 그때까지 다들 건강히 잘 지내고, 서로 많이 성장해 있기를.

One reply on “스콜의 마지막”

[…] 회사가 폐업 절차를 밟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한 군데 면접을 진행하게 되었다. 같은 건물에 있는 곳이었기 때문에 이직에 성공하면 환경이 크게 바뀌지도 않고, 이름도 있는 곳이라 여러모로 장점이 많은 곳이었다. 서류를 통과하고, 1차 실무면접까지 통과해 모든게 순조로워 보였다. 2차 면접은 한창 코로나 바이러스와 내부 일정 때문에도 몇 번이고 연기가 되어, 몇 주가 지난 뒤에야 진행할 수 있었다. 화상 면접으로 진행해야 했기에, 근처 스터디룸을 하나 빌려 준비를 하고 면접을 보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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