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325

요즘 할머니와 사이가 썩 좋지 않다. 동생 결혼 준비 관련해서 이런저런 얘기하다가 자꾸 과도한 간섭을 하려고 하셔서 한소리 했다가 완전 틀어져 버렸다. 이 나이 먹고 할머니와 싸우고 밖에서 돌아다니다 보니 뭐하는건가 싶다. 할머니랑 너무 오래 붙어서 살았나 싶기도 하고… 행복하게 이별하려면 결국 내가 결혼을 해야 하는건가.

집에 있으니 서로 불편해서 밖으로 나왔다. 나온김에 필요한 것들을 다이소에서 좀 사고 나오니 건너편에 성당이 보였다. 할머니가 4월 미사책 좀 사달라는 말을 며칠 전(싸우기 전)에 했던 것이 기억나 일단 사두기는 했다. 지금 직접 주기는 그렇고 동생 들어오면 동생 통해서 줘야겠다.

그런데 집에 오는길에 보니 집 열쇠가 사라졌다 ㅠㅠ 에어팟 프로끼고 돌아다녔는데 지갑 꺼내면서 같이 빠졌던 모양… 노이즈 캔슬링 때문에 떨어지는 소리를 못 들었나보다(애플 광고 아님. 애플 개객끼). 내일 다시 동선을 따라가보며 혹시 습득한게 있는지 다녀봐야겠다 ㅠ

지난 금요일에는 2차 면접을 봤는데 아직 소식이 없다.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화상 면접으로 진행했는데, 예상치 못한 질문들도 많고 해서 횡설수설 하다가 끝나버렸다. 망한 듯 ㅋㅋㅋ. 그래도 결과를 확실하게 들어야 다음으로 넘어갈 수 있는데-좀 더 쉬면서 뭔가 할지, 다른 곳에 취업을 알아볼지-, 아직 답이 없어서 기다리는 중이다. 코로나 때문에 어디 놀러 가지도 못하고, 취업 프로세스도 전체적으로 느리거나 연기되는 상황이라 차라리 좀 더 느긋하게 보는게 나을것 같기도 하다.

오늘 책을 읽다가 든 생각인데, 그동안은 일 하느라 디지털의 세계에서만 살았다면, 요즘은 주식 관련 뉴스도 보고, 다른 정보들을 습득하면서 세상에 대해 좀 더 배우고 있는 기분이다. 위에서 말한 취업이 잘 안 되면 재밌는 것들이 뭐가 있을지 또 열심히 찾아봐야겠다.

지옥을 만드는 방법은 간단하다

어릴 때는 나보다 중요한 사람이 없고,
나이 들면 나만큼 대단한 사람이 없으며,
늙고 나면 나보다 더 못한 사람이 없다.

돈에 맞춰 일하면 직업이고,
돈을 넘어 일하면 소명이다.

직업으로 일하면 월급을 받고,
소명으로 일하면 선물을 받는다.

칭찬에 익숙하면 비난에 마음이 흔들리고,
대접에 익숙하면 푸대접에 마음이 상한다.

문제는 익숙해져서 길들여진 내 마음이다.

집은 좁아도 같이 살 수 있지만,
사람 속이 좁으면 같이 못 산다.

내 힘으로 할 수 없는 일에 도전하지 않으면,
내 힘으로 갈 수 없는 곳에 이를 수 없다.

사실 나를 넘어서야 이곳을 떠나고,
나를 이겨내야 그곳에 이른다.

갈 만큼 갔다고 생각하는 곳에서 얼마나 더 갈 수 있는지 아무도 모르고,
참을 만큼 참았다고 생각하는 곳에서 얼마나 더 참을 수 있는지 누구도 모른다.

지옥을 만드는 방법은 간단하다.

가까이 있는 사람을 미워하면 된다.

천국을 만드는 방법도 간단하다.

가까이 있는 사람을 사랑하면 된다.

모든 것이 다 가까이에서 시작된다.

상처를 받을 것인지 말 것인지 내가 결정한다.

또 상처를 키울 것인지 말 것인지도 내가 결정한다.

그 사람 행동은 어쩔 수 없지만 반응은 언제나 내 몫이다.

산고를 겪어야 새 생명이 태어나고,
꽃샘추위를 겪어야 봄이 오며,
어둠이 지나야 새벽이 온다.

거칠게 말할수록 거칠어지고,
음란하게 말할수록 음란해지며,
사납게 말할수록 사나워진다.

결국 모든 것이 나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나를 다스려야 뜻을 이룬다.

모든것은 내 자신에 달려 있다

– 백범 김구 –

스콜의 마지막

여러분, 가능한 빨리 퇴사해 주십시오.

2020년 2월 5일, 모든 직원들을 회의실에 모은 뒤 꺼낸 대표님의 첫 마디였다. 이 날 우리 회사는 폐업을 결정했음을 모두에게 알렸다.

회사에서의 나의 위치 덕분에, 돌아가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은 1월 설 연휴 전부터 알 수 있었다. 한창 바쁘게 돌아가야 할 신작 프로젝트가 지지부진 해지고, 결정은 미뤄졌다. 설 연휴 때 급작스럽게 마련된 술 자리에서는 우리 회사가 처한 현실과 거기서 선택할 수 있는 미래들을 엿볼 수 있었다. 경영진은 애쓰고 있었고, 직원들에겐 말할 수 없었다. 무언가 결정날 때까지 마냥 기다릴 수 밖에 없었고, 꽤 고통스러운 시간들을 애써 흘려 보냈다.

그렇게 많은 경우의 수가 머리 속을 오가고, 서로가 생각하는 미래가 메일로 오간 뒤에 내려진 결론이 폐업이었다. 분위기는 넌지시 공유가 되었으나, 막상 폐업으로 결정된 현실이 대표님의 입을 통해 회의실에 들이닥치자 모두가 얼어 붙은 기분이 들었다. 경영진들은 최선을 다해 퇴직금을 지급할 것이고, 더불어 그동안 함께 고생해준 것에 대한 감사의 의미로 위로금도 지급될 것이라고 안내가 된 뒤에야 조금은 안심하는 분위기가 되었다. 실업급여와 퇴직금, 위로금이면 몇 개월 동안은 경제 활동 없이도 여유 있게 미래를 준비할 수 있는 기간일테니.

나도 이 회사에서만 5년을 넘게 있었다. 그동안은 2년 마다 병특이 끝나서, 조직개편으로, 더 성장하고 싶어서 회사를 옮겼는데, 한 곳에서만 이처럼 오래 있었던 것도 처음이었다. 함께 했던 사람들이 좋았고, 내가 성장한다는 느낌을 받았고, 대우도 만족스러웠다. 생각해 본 적 없는 분야에 발을 담궜음에도 이 회사였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 같다. 더 가고 싶었지만 그렇지 못했던 현실은 얘기하다보면 격해질거 같으니 자제.

그렇게 3월 5일, 마지막 출근을 마쳤다. 내가 이 회사에 올 때 예전에 함께 했던 사람들과 다시 뭉쳤던 것처럼, 이 회사에서 흩어진 사람들이 다시 뭉쳐서 뭔가를 할 수 있는 날이 또 오지 않을까 기대하게 된다. 그때까지 다들 건강히 잘 지내고, 서로 많이 성장해 있기를.

대격변의 해가 될 것 같은 2020

어느새 2020년이나 되었고, 설날 연휴까지 보내고 나니 1월도 훌쩍 지나갔다. 올해는 벌써부터 많은 일들을 앞두고 있다.

첫번째로, 동생의 결혼이 다가온다(우리 집안의 개혼은 결국 동생의 몫으로… ^_ㅠ). 같은 취미를 가진 친구를 만나 결혼까지 인연을 이어가게 되었다. 나도 축구 대신 테니스를 더 배워야 한다며 난리다.

다음으론 아마도 나의 이직이 있을 것 같다. 예상치 못하게, 뜻밖의 상황에 놓여졌고, 아마도 이직을 하게 되지 않을까. 그동안 잠시 외면했던 일들을 다시금 들춰보고, 다음 10년을 어떻게 보낼지 계획을 세워봐야겠다. 잠시 쉬는 타이밍이 생긴다면 수영도 좀 배워두고.

동생 결혼식 잘 치르고, 이직하고 나서 정신차려 보면 벌써 2020년의 반은 흘러가있지 않을까? 2020년 연말에도 “올해 정신 없었지만 다 잘 마무리 되었구나”하고 말할 수 있는 한 해가 되기를.

이사 D+7

이사한지 어느덧 1주일이 지났다. 이전 전세집의 집주인에게 잔금을 제대로 받을 수 있는지가 마지막 관문이었는데, 다행히 잘 마무리! 이사 후 이것저것 느낀 점들을 남겨두려고 글을 열었다.

이사 후에 커진 독립에 대한 열망

독립에 대해서 사실 큰 욕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나중에 누군가와 결혼을 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독립을 하는 것만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번에 이사하고 나서는 오히려 독립하고픈 생각이 조금 커졌다. 독립을 하게 되면 얻게 되는 장점들을 많이 생각하게 되었달까.

우선, 뭐니뭐니 해도 내가 원하는 대로 꾸미는 나의 공간이란 점이 제일 큰 장점인 것 같다. 지금은 할머니의 짐과 여동생의 짐까지 섞여서 실질적으로 내가 온전히 내맘대로 할 수 있는 공간은 극히 일부분이다. 결혼을 하게 되면 서로 상의해서 만드는 공간이겠지만, 지금의 구성원으로는 3인 3색의 공간이 나올 뿐이었다. 이사할 때도 느꼈지만 0~1명의 사람과만 상의하면 되었을 일을, 이번 이사 때는 3~4명의 사람과 조율하느라 너무 힘들었다.

어색해진 송파구

이사 후에도 간간히 송파구에 찾아가게 될 일이 있었다. 부동산 업무를 마저 본다거나 친구를 만나는 등의 이유였다. 그런데 사람이 간사한건지, 그새 며칠 다른데서 잠을 잤다고 송파구가 부쩍 어색해진 기분이 들었다. 마치 헤어진 전여친을 만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달까? 술 취해서 전여친에게 전화하면 안 되는 것처럼, 술 취해서 전에 살던데로 다시 오면 안 될텐데 하는 생각을 했다.

마냥 어색한 줄 알았던 송파구도, 다시 따뜻함을 느끼게 되는 순간들은 있었다. 늘 집으로 향하던 길의 마지막 신호등이라거나, 석촌호수 산책길을 걸으며 보는 풍경들이라거나.

어쨌거나

지금은 다시 새 집으로 돌아와 내일을 준비하고 있다. 생각보다 출근길이 멀게 느껴지지 않아서 다행이고, 동네를 발견하는 재미가 있어서 좋다. 한 달 뒤에도, 1년 뒤에도 더 좋아지기를.

이사 D-5

이제 5일 뒤면 이사를 하고, 1주일 뒤에는 송파와 이별하게 된다. 25년간 사귄 친구와 헤어지는 기분이 든다.

안녕, 그동안 고마웠어.

앨범 정리

이사 준비를 하면서 버릴 것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책상 서랍 속에서 옛 앨범이 나왔는데 몇 년 동안 나중에 정리하자 하면서 묵혀왔던 것이었다.

시간이 많이 지나서 이젠 무덤덤 할 줄 알았는데, 막상 정리 하다보니 마음이 다시 아련해져 버렸다.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무뎌지지 않는게 있긴 있나보다.

36번째 생일

어제는 만 36번째 생일이었다. 다른 사람들의 생일은 열심히 챙기면서도 내 생일엔 크게 기대하지 않으려고 하는 편인데, 어제는 기대보다 많은 축하를 받은 날이었다. 세심하게 이모티콘을 골라준 친구도 있었고, 치킨을 선물해준 친구, 스벅 쿠폰을 선물해준 사람들까지 선물도 다양했다. 많은 사람들의 축하 메시지에 답하느라 손이 무척 분주하기도 했다 ㅎㅎ

생일 기념으로 은행에선 집과 빚을 선물해줬다. 회사에서 반차를 받아 아파트 사무실로 가서 열쇠와 입주 선물들을 받았는데 기분이 오묘하다. 이제 이사 잘 하고 돈 잘 갚으면서 은행집을 내집으로 바꿔 나가야지 ㅋㅋ

분발하라 비씨카드여

은행에서 금리 조건 때문에 신용카드를 하나 발급해서 사용해야했다. 종류는 비씨카드. 억지로 쓰는거 항공사 마일리지라도 쌓자 싶어서 마일리지 연동으로 신청해서 3일 정도 앱과 오프라인으로 사용해봤는데 그동안 내가 왜 비씨카드를 안 썼는지 단점이 온몸으로 느껴졌다.

첫번째는 가입 기념으로 받았던 바우처. 해당 카드로 결제하면 5000원짜리 상품권을 4500원 할인 받아서 살 수 있다. 마침 컴퓨터를 쓰고 있던 상황이라 홈페이지에서 가입하고 모바일로 로그인을 하려는데… 모바일용은 비밀번호를 따로 만들어야 한단다(대체 왜?!). 어쨌거나 모바일 비밀번호만 만들면 되겠지 생각했는데, 앱에서 ‘웹회원입니다’ 선택하고 본인인증 선택했더니 기존 가입된 회원이라며 튕겨낸다. PC 웹에서도 해당 메뉴는 찾을 수가 없고… 결국 웹에서 회원탈퇴하고 모바일로 다시 가입했다.

두번째는 오프라인으로 결제했을 때였다. 결제한 내역이 문자로 전송되지 않아 알림 신청을 하려고 앱을 열었는데 앱에서 신청할 수가 없었다. 홈페이지나 고객센터를 통해서만 가능한 듯… SMS로 받고 있는 상황에서 앱으로 푸시 메시지를 받을 순 있는데, SMS 신청은 앱으로 바로 할 수가 없더라. 다른 카드사에선 쉽게 신청했던 항목인데 진행할 수가 없어서 답답.

전체적으로 PC/모바일 통합이 아직 매끄럽지 않은 느낌이고 다른 카드사 대비 장점을 찾기도 전에 단점이 너무 빨리 부각되어 버렸다. 어쨌거나 나도 몇 년간은 꾸준히 써야할텐데, 분발하라 비씨카드여.

이사 준비2

지난 번 이사 준비라는 글을 올린지 어느새 한 달이란 시간이 지났다. 그동안 부동산을 끼고 많은 집들을 둘러 보고, 머리를 맞대보고 한 끝에 방향이 정해졌다. 수지로 간다. 송파를 떠난다.

송파에 남아 할머니의 커뮤니티를 유지하는 것을 우선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동생이 할머니를 설득한 끝에 송파를 떠날 결심을 할 수 있었다. 동생이 설득한 논리는 두 가지.

  • 송파에 전세를 구해도 2년 뒤엔 어떻게 될지 또 모른다. 그때는 할머니 연세가 있어 더 힘들어 질 수 있다.
  • 수지쪽으로 내려가면 돈을 좀 보태서 깨끗한 집을 살 수 있다. 그쪽은 발전 가능성도 있어서 집값이 오르면 돈 벌 가능성도 있다.

지금 집주인이 상당히 골치 아프게 군 탓에 첫번째 논리가 먹힐 수 있었고, 주변에서 수지쪽이 괜찮다는 말을 다방면으로 할머니에게 한 덕분에 두번째 논리도 먹혔던 것 같다. 어쨌거나 큰 결심을 하셨다.

근데 막상 송파를 떠날 결심을 하니 내게도 동네 풍경이 모두 아련해진다. 밤마다 산책, 러닝하던 석촌호수도 그리워 질 것 같고, 롯데의 풍경도, 골목의 카페들도 보고 있으면 짠하다. 나에게는 초등학교 5학년부터 살았던 동네. 25년의 시간을 송파에서 보냈다. 학창시절의 추억부터 대학생활, 연애사, 직장생활까지 곳곳에 묻은 스펙트럼도 넓다. 언젠가는 해야할 수도 있는 이별이었겠지만, 이별을 앞두고 바라보는 풍경은 너무도 감성 돋는다. 수지에서는 얼마나 살게 될까?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 하는 새로운 기대보다는 송파구 Endgame 이 아직은 더 크게 다가온다.

이제 갈 곳도 정해지고 지금부터는 부동산보다는 은행을 바쁘게 돌아다닐 차례다. 이사갈 그 날까지 잘 부탁해요 송파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