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느즈막히 일어난 일요일이었다. 친구들 만나려는 약속은 다음으로 미뤘고, 오늘은 밀린 일들을 처리하기로 했다. 집에 누워있는 강아지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목욕을 시켜야 할 타이밍이었는데, 마침 날씨가 제법 풀린 것 같아서 오랜만에 산책을 시켜주기로 했다. 산책줄을 꺼내자 쏜살같이 달려나와 매달리는 대박이(개 이름). 오랜만에 산책을 시켰더니 기쁨의 크기만큼 대박이의 체력이 따라주지는 못했던 것 같다. 돌아오는 길은 유난히 속도가 느렸으니까. 날씨 풀리면 좀 더 자주 데리고 나가야지.
산책과 목욕을 끝내고 나니 한 달 즈음 전에 받은 커피 원두가 보였다. 블루보틀에서 가져온 원두였는데 집에 그라인더가 없어서 향만 맡는 중이었다. 근처 커피숍에 갈아줄 곳이 있을까? 송리단길이 뜨면서 카페는 많이 생겼지만 그만큼 까다로워졌을것 같았다. 우선 가까운 곳부터 하나둘씩 시도해보았는데 결과는 역시나 거절. 그라인더에 카페에서 쓰는 원두가 아닌 다른 원두가 섞이면 청소도 힘들고 서비스에도 지장이 있을테니 거절하는 것도 이해가 갔다.
걷다 보니 스타벅스까지 가게됐다. 스타벅스는 원두 그라인딩 서비스를 무료로 해주고 있는 곳이다. 여기서는 그래도 되지 않을까 하고 원두를 보여줬는데 이런! 완전 밀봉된 상태로 가져온 원두가 아니면 해줄 수 없다고 한다. 결국 원두 갈기는 실패. 혹시나 하고 부모님이 계신 용인집에 물어봤더니, 오래된 그라인더가 하나 있다고 한다. 마침 구정 설 연휴가 다가오니, 그때 가져가서 다 같이 커피 마시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