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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생각

나쁜 아들이 착한 손주를 만든다

오늘은 할머니의 병원진료가 있는 날이었다. 수지로 이사했지만 할머니는 여전히 석촌에 있는 병원을 이용하신다. 새로운 곳에서 또 처음부터 진료기록을 쌓기 보다는 안면이 있는 병원을 꾸준히 이용하시는 것이다. 게다가 석촌에는 할머니의 성당 친구분들도 계시고, 역시 얼굴을 익힌 미용실 아주머니, 약국들도 있다. 그래서 할머니의 병원 진료가 있는 날은 곧 할머니의 소셜 활동하는 날이 된다.

그렇게 어른들을 만날 때마다 늘 듣는 말이 있다.

“아이고 착한 손주네. 할머니 모시고 이렇게 왔다갔다 하고.”

그동안은 그냥 웃으며 넘기던 말이었는데 오늘은 갑자기 다른 생각이 들었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석촌에서 가족 구성원은 할머니, 아버지, 나, 동생 그리고 대박이(강아지)까지였다. 그러다 아버지가 어머니와 함께 용인으로 먼저 거처를 옮기셨고, 나머지 셋(+1 강아지)이서 수지로 이사를 했다가 동생이 결혼을 하면서 빠져나갔다. 결국 남은 것은 할머니와 나, 대박이였다.

석촌에 있을 때도 아버지와 할머니는 종종 큰 의견 차이를 보이곤 했다. 아버지는 밖에서 다른 걸로 기분전환 할 수 있었지만, 할머니는 그렇지 못했기에 나와 동생에게 의지를 많이 했고, 우리도 할머니에게 잘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시간이 지나도 아버지와 할머니의 관계는 평행선을 달렸고, 결국 이 관계는 어느 정도 고착화가 되어 버렸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할머니 입장에서) 나쁜 아들이 있었기에, 그 자리를 대신할 착한 손주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아버지와 할머니의 사이가 좋았다면 내가 들었던 칭찬의 반 정도는 아버지가 들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보면 나는 마지막 보루 같은 역할을 계속 하고 있는 것 같다. 아버지가 할머니를 모시고 있지 않기에 내가 할머니를 모시고 살고 있고, 심지어 대박이도 동생이 데려온 강아지인데 내가 맡아서 키우고 산책도 시켜주고 있다. 나의 지분 100%인 나의 집에서(나의 독립은 어디로…)(그래도 동생이 종종 이것저것 함께 챙겨줘서 다행).

그래서 요즘은 자꾸 보상심리가 발동하는 것 같다. 좀 더 나를 위해서 쓰고 싶은 돈과 시간들. 어떻게하면 할머니와 아름다운 이별을 할 수 있을까 – 답은 역시 결혼이겠지 – 도 생각해보고.

아마 내년 중에는 목돈이 생길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나를 위해서 크게 한 번 지르고 싶다는 생각이 들고 있다. 지금 제일 꽂혀있는건 이름에 ‘ㅌ’이 들어가는 전기차… 과연 플렉스 할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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