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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Culture) 책(Book)

[책] 사랑의 습관 A2Z

A2Z

평소에 소설을 자주 읽지는 않는데, 이 책은 트위터에서 소개를 보는 순간 어쩐지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은 책 알려주신 @ego2sm 님에게 감사를. 책 소개는 씨네21의 것이 제일 좋았다. 딱 한 문장만 업어 온다면 역시 @ego2sm 님의 한 마디를 꼽겠다.

연인이 함께 읽기에는 부적절하지만 연애에 제대로 큰코다친 이들에게는 제법 속깊은 이성친구가 되어주는 기묘한 연애소설.

전체 220여 쪽의 그리 길지 않은 분량이기도 했지만, 내용이 잘 읽히고 재밌어서 단숨에 읽어버렸다. 연애할 때의 기분이 되살아나기도 하고 해서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다른 곳의 리뷰에서는 연애를 시작할 때마다 이 책을 읽는다는 글도 있었는데 왜 그런지 알 것도 같다. 결혼한 부부가 서로 다른 이성과 교제를 한다는 점에서 불륜, 바람 피우는 이야기라고 해버리기에는, 풋풋하고 순수한 감정을 많이 느낄 수 있는, 정말 기묘한 연애소설이다.
아래는 유독 눈길이 머물렀던 문장들.

나는 그가 처음 만난 사람처럼 느껴진다. 계속 찾아 헤매다가 만난 사람.
– p.56

“나쓰미는 데이트만 해선 안 되는 여자, 섹스만 하는 것도 안 되는 여자. 복잡해.”
역시.
“그래서 이 방 안에만 있어도 전혀 지루하지 않아.”
– p.161
“무엇을 보든 무엇을 하든 이제 나만의 느낌이 아니야. 나 혼자가 아니더라고. 늘 나쓰미가 섞여 있어.”
– p.162

한 줄 평: 주변에 널리 추천하고 싶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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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생각

이 구역의 빅호구는 나야

사진은 부산 감청동 문화마을에서
사진은 부산 감청동 문화마을에서

1.
연애에 대해 고민하는 글이나 상담을 보다 보면 이런 패턴을 보곤 한다. 나는 상대가 좋아서 계속 이것저것 해주는데 이러다 그냥 호구가 되는거 아닌가, 밀당이 필요한거 아닌가 고민이 된다고. 내가 연애를 많이 해본 건 아니지만, 이래서 못하는 걸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럴 때마다 기왕 하는거 그냥 빅호구가 되어 버리라고 한다. 좋아하는 마음이 있는데 이것저것 재면서 망설이는 시간이 아깝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마음껏 부딪혀보고 최선을 다해보는데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면 그때 돌아서면 된다. 세상엔 이래라 저래라 규칙들이 너무나도 많다. 연애라도 나 하고 싶은대로 하면서 살자는게 나의 주의. 호구가 되는걸 두려워하지 말고 외쳤으면 좋겠다. ‘이 구역의 빅호구는 나야!’
2.
연인을 만나면 어떻게 지내고 싶냐는 질문을 간혹 받는데, 서로 시간이 날 때마다 최선을 다해 만나고 싶고, 그러면서도 각자의 개인 시간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는 답변을 한다. 독립적인 여성상을 원한다고 할까나… 그럴때면 그런 여자 찾기 힘들 것 같다는 반응이 이어진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3.
1과 2를 같이 들은 호주 국적의 한국인이 있었는데, 나보고 외국에 나가서 살아본 적이 있냐고 물었다. 여행은 다녀봤지만 쭉 한국에서만 살았다고 하니까, 그런 것치고는 마인드가 굉장히 서구적이라고 한다. 무엇이 날 이리도 서구적으로 만들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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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생각

인정하는 것과 수용하는 것

로렌스는 교사다. (…) 그에게는 프레드라는 연인이 있다. 둘은 평생을 함께하기로 한 사이다. 서른 살 생일을 맞이한 로렌스를 위해 프레드는 파티를 준비한다. (…) 한참을 망설이던 로렌스가 프레드에게 비밀을 털어놓는다. 로렌스는 여자가 되고 싶어한다. 지금까지 30년 동안 자기 자신을 속이면서 살아왔다. 그래서 이제부터라도 솔직하게 살고 싶다는 것이다. 프레드는 충격을 받는다. 로렌스는 여장을 하기 시작하고, 프레드는 신경쇠약에 시달린다. 프레드는 로렌스를 이해하려 노력한다. 로렌스는 프레드에게 이해받기를 원한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에게 쉽지 않은 일이다. 어찌됐든, 그들은 여전히 사랑하고 있다.
(중략)
그런 소재의 특수성에 갇혀 등장인물들이 서로 힘들어만 하다가 마는 영화를 보고 싶어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러나 이 영화의 정수는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는 것과 ‘수용’하는 것이 전혀 다른 문제라는 사유로부터 발견된다. 그것은 매우 특이한 상황에서나 성립하는 특별한 종류의 고민이 아니다. 대개의 연애가 파장에 이르는 가장 보편적인 이유다.
로렌스는 본 모습을 찾고 싶어한다. 그는 여자로 살고 싶다. 그를 바라보며 고통을 겪는 프레드를 이기적인 여자라고 생각할 수 없다. 그녀가 당황하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금세 로렌스의 정체성을 인정하고 응원해주는 프레드의 모습은 아름답다.
그러나 프레드와 로렌스는 결국 함께할 수 없다. 헤어질 수밖에 없다. 어떻게 사랑이 변해요, 라는 질문은 성립되지 않는다. 사랑이 변한 게 아니라 상황이 변한 것이다. 프레드는 이미 로렌스의 ‘다름’을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그런 그를 평생 함께할 동반자로, 자기 삶을 공유할 타인으로 ‘수용’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참고 희생하고 이해해야만 성립되는 관계란 고통이다. 그걸 사랑의 위대함이라는 미사여구를 동원해 애써 치장하려는 노력은 웃기는 짓이다. (…)
극복할 수 없는 다름을 타인에게 수용하라고 강요하는 것은, 다름 그 자체를 아예 인정하지 않는 배타적인 태도만큼이나 저열하고 폭력적인 행동이다.
로렌스는 자기를 찾았고, 앞으로도 그런 자신을 지키기 위해 열심히 살아갈 것이다. 프레드는 가정을 꾸렸고 자식을 키우며 열심히 살아갈 것이다. 그리고 가끔씩, 그 언젠가 프레드가 로렌스의 등에 써주었던 글귀를 떠올릴 것이다. “건강을 지킬 것과, 위험을 피할 것과, 과거를 잊고 희망을 가질 것을 자기 이름을 걸고 맹세해.” 다 이루어졌다. 허지웅(주간경향)
원글: 로렌스 애니웨이 – 허지웅

보통 다른 이의 블로그글은 최소한으로 옮겨오는 편인데, 이 글만큼은 이렇게 많이 옮겨올 수 밖에 없었다. (…)과 (중략) 표시로 내용을 마음대로 압축한 버전이니, 전체 내용이 궁금하신 분은 위 링크를 타고 가시라. (사실 80% 정도 옮겨와서 내용에 큰 차이는 없다…)
성 정체성이란 소재로 ‘인정하는 것과 수용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라는 이야기를 풀어낸 영화 <로렌스 애니웨이>. 소재는 특수하지만 느끼는 바가 많다. 대개의 연애가 파장에 이르는 가장 보편적인 이유라는데서 뜨끔…
상대방이 수용할 수 있는 얘기만 하는 건 분명 옳지 않은 일이겠지만, 어떤 일들은 그래야 할 필요도 있는 것 같다. 나를 전면 부정하는 일이 아니라면 말이지.
어쨌거나 영화 속 주인공들은 함께 하지는 못 하지만, 각자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나도 그럴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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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생각

연애의 역설

혼자인 사람은 혼자라서 외롭지만 하나의 완성된 존재다.
연애 중인 사람은 둘이 하나가 되었기 때문에,
떨어지면 더 부족한 존재가 되어버린다.
좋아하는 사람을 더 오래 만나기 위해서는 조금 덜 좋아하는 때도 필요하다.
좋아하니까 덜 좋아해야하는 그런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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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생각

궁지에 몰아넣기

블로그를 이쪽으로 옮기면서 솔직히 홍보를 많이 하지는 않았다. 사람들이 많이 볼 수 있는 곳에 노출도 많이 안 했고, ‘나 여기에서 블로그 하고 있어요!’라고 알리는 일도 거의 없었다. 어쩌다 한 번씩 블로그 방문 통계를 보며 대체 이곳에 찾아오는 사람들은 어떻게 오는 것일까 신기해 하는 일이 전부였으니까.
그러다가 트위터로 조금씩 글을 보내기도 하고, 새로운 사람들에게 ‘저는 이런 곳에서 지내는 사람입니다’라며 조금씩 이곳을 알리고 있다. 어떤 면에서는 스스로를 궁지에 몰아넣는 기분이다. 어쨌거나 보는 눈이 좀 더 많아지면 글을 더 많이 쓰지 않을까… 압박을 느끼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
오늘 본 세바시(세상을 바꾸는 시간) 동영상에 이런 말이 있었다. 동안보다 동심을 유지해야 하는 거라고. 호기심과 사색, 도전, 그리고 여행. 세상을 열심히 살아갈수록 여기에 쓸 말도 많아지리라 믿는다.
+ 봄이 와서 그런걸까? 요즘엔 재밌는 일도 점점 생겨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