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을 동네 슈퍼에 데리고 간다. 풀어놓고 ‘너 사고 싶은 거 다 사라’고 하면 아이는 정말 눈에 띄는 걸 다 집는다. 먹어본 과자, 안 먹어본 사탕, 포장만 예쁜 젤리, 내용물보다 장난감이 더 많이 들어 있는 초콜릿, 전부터 사보고 싶었지만 차마 집지 못했던 비싼 쿠키… 끝까지 먹는 것도 있겠고 한 입 먹어보고 다시는 안 살 것들도 있겠으나, 어쨌든 제가 궁금했던 것들은 다 사고 다 뜯어 보고 먹어 본다.
하지만 슈퍼 앞에서 아이에게 ‘너 사고 싶은 것 딱 하나만 사준다’고 하면, 일단 고르는 시간이 한 세 배쯤 늘어난다. 들여다보고, 집었다가 놓고, 흔들어보며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다. 그러다 대부분의 경우 가장 좋아하는 과자를 고른다. 많이 먹어봤고, 맛을 잘 알고, 그래서 절대 실패하지 않을 ‘안전한’ 선택. 대신 지난번에 못 산 과자는 이번에도 못 산다.
소비에 실패할 여유 중에서
돈을 많이 벌어서 좋은 점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실패할 수 있는 여유가 그만큼 많아졌다-고 하겠다. 이제껏 내 영역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명품관에도 조금씩 기웃거려 보게 되고, 대체 누가 가는 곳일까 궁금해하던 파인 다이닝에서도 다양한 메뉴를 시도해 볼 수 있다는 점. 그리고 그렇게 알게된 좋은 것들을 내가 아끼는 주변 사람들과 나눌 수 있다는게 최고의 행복이 아닐까 싶다.
2 replies on “실패할 여유”
누가 돈이 행복을 좌우하지 않느냐고 이야기하면. 절대적인 돈의 양이 부족한게 아닌지 돌아보라고 했는데, 나이가 들수록 맞는 말이라고 생각.
돈이 많다고 꼭 행복할 순 없겠지만, 재화가 많다는 것은 적어도 내 마음에 여유를 가져다 줄 확률이 (절대적으로)높은 것 같음.
ㅇㅇ 맞아. 재화와 행복의 그래프를 그려보면 후반에는 재화가 많이 늘어나도 행복이 조금 늘어나겠지만, 그전까지는 재화가 주는 행복의 크기가 무시 못하는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