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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생각

기적이 필요없는 세상

중국 전국시대에 ‘편작’이라는 전설적인 명의가 있었다. 어느 날 위나라 왕이 편작에게 물었다.
“너의 3형제 중 누가 가장 뛰어난가?”
편작이 답했다.
“큰 형님이 가장 뛰어나고, 그 다음은 둘째 형님이며, 제가 가장 아래입니다.”
왕이 다시 물었다.
“내가 듣기로는 천하의 명의가 너 편작이라 들었는데, 너의 두 형에 대해서는 들은 것이 없다. 내가 잘못 알고 있는 것인가?”
편작이 답했다.
“큰 형님은 환자가 아픔을 느끼기 전에 얼굴빛을 보고 장차 병이 있을 것을 압니다. 그리고 병이 나기도 전에 병의 원인을 제거해 줍니다. 환자는 아파 보기도 전에 치료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환자는 고통을 미리 제거해 주었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에 큰 형님이 명의로 소문나지 않은 것입니다.”
“둘째 형님은 병세가 미미할 때 그의 병을 알고 치료해줍니다. 그러므로 환자는 둘째 형님이 자신의 큰 병을 미리 낫게 해주었다는 것을 잘 모릅니다.”
“그렇다면 너는 어떠냐?” 왕이 다시 물었다.
“저는 실력이 없어서 병이 커진 후 환자가 고통을 호소할 때 비로소 알아차립니다. 맥도 짚어야 하고, 처방하고, 아픈 것을 도려내기 위해 수술도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병을 미리 알지 못해 뒤늦게 수선 떠는 나를 보고 큰 병을 치료해 줬다고 명의라 칭하며 고마워합니다. 이것이 저희 3형제 중 가장 실력이 모자란 제가 명의로 소문난 이유입니다.”
– [갈관자] 중에서


많은 학생들을 태우고 출발했던 세월호의 침몰 사고. 총 탑승자 480여명 중 무사히 우리 품으로 돌아온 사람은 아직 174명이다. 발견된 사망자는 늘어가는 가운데 아직 생사여부가 확인되지 않은 사람은 238명(4/21 기준). 사고가 난 16일로부터 시간이 꽤 많이 흘렀지만, 생존자가 한 사람이라도 더 있기를, 기적이 있기를 바라고 있는 상황이다.
기적을 기대해야 하는 지금 이 상황이 싫다. 사고가 일어난 순간 해야할 일들을 적절히 수행했다면 기적이 필요한 순간은 없었을 것이다. 아니 애초에 시스템이 잘 돌아가고 있었다면 사고조차도 없었을지 모른다.
이 사고를 계기로 바뀌어야 할 부분이 적절하게 바뀌지 못한다면, 우리는 또 다시 병이 한참 진행된 뒤에야 기적을 바라게 될 것이다. 기적이 필요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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