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염

내게 수염은 늘 번거로운 존재였다. 기르는 습관도 없는데 어찌나 자주 면도를 해야하는지. 또 그 면적은 왜 이리 넓은지. 하지만 어느날 사촌형이 ‘나도 너처럼 수염 났으면 좋았을텐데’라는 말을 하고난 뒤부터, 수염은 내 자산 중 하나가 됐다.

하지만 수염을 기른다는 것은 어쩐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자리를 잡을 때까지의 과정이 꽤나 지저분해 보이고, 주변에서도 그다지 수염을 기르는 것에 찬성하지 않는 편이었기 때문이다. 3년쯤 전, 회사-집을 반복하는 사이클에 지쳐 ‘휴가 갈 때까지 수염을 길러보자’고 작정하고 1주일만 길렀을 때에도 어찌나 반대가 심하던지. 그나마 열 명 중 한 명은 괜찮다고 해주었다.(Thank you HJ)

그런데 최근엔 분위기가 살짝 달라진 모양새다. 주변에 수염 기른 남자들이 많아진 덕분일까? 가끔 일탈 삼아 한 주간 면도를 안 해도 더 길러보라고 권유해주는 사람들이 예전보다는 늘어났다. 가장 최근엔 2주까지 수염을 길러봤는데도 오히려 받아들여주는 분위기? 다음엔 좀 더 모양을 잡아가며 한 달쯤 유지를 해볼까 싶다. 첨엔 어색해도 보다보면 괜찮아지겠지.

커피 원두 갈기는 어려워

모처럼 느즈막히 일어난 일요일이었다. 친구들 만나려는 약속은 다음으로 미뤘고, 오늘은 밀린 일들을 처리하기로 했다. 집에 누워있는 강아지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목욕을 시켜야 할 타이밍이었는데, 마침 날씨가 제법 풀린 것 같아서 오랜만에 산책을 시켜주기로 했다. 산책줄을 꺼내자 쏜살같이 달려나와 매달리는 대박이(개 이름). 오랜만에 산책을 시켰더니 기쁨의 크기만큼 대박이의 체력이 따라주지는 못했던 것 같다. 돌아오는 길은 유난히 속도가 느렸으니까. 날씨 풀리면 좀 더 자주 데리고 나가야지.

산책과 목욕을 끝내고 나니 한 달 즈음 전에 받은 커피 원두가 보였다. 블루보틀에서 가져온 원두였는데 집에 그라인더가 없어서 향만 맡는 중이었다. 근처 커피숍에 갈아줄 곳이 있을까? 송리단길이 뜨면서 카페는 많이 생겼지만 그만큼 까다로워졌을것 같았다. 우선 가까운 곳부터 하나둘씩 시도해보았는데 결과는 역시나 거절. 그라인더에 카페에서 쓰는 원두가 아닌 다른 원두가 섞이면 청소도 힘들고 서비스에도 지장이 있을테니 거절하는 것도 이해가 갔다.

걷다 보니 스타벅스까지 가게됐다. 스타벅스는 원두 그라인딩 서비스를 무료로 해주고 있는 곳이다. 여기서는 그래도 되지 않을까 하고 원두를 보여줬는데 이런! 완전 밀봉된 상태로 가져온 원두가 아니면 해줄 수 없다고 한다. 결국 원두 갈기는 실패. 혹시나 하고 부모님이 계신 용인집에 물어봤더니, 오래된 그라인더가 하나 있다고 한다. 마침 구정 설 연휴가 다가오니, 그때 가져가서 다 같이 커피 마시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스타그램으로 돌아본 2018

매년 연말 즈음, 인스타그램에는 그 사람이 한 해 동안 올린 인스타그램 중에 가장 인기 있었던 사진 9장을 뽑는 #bestnine 이 올라온다. 나도 이걸 뽑고보니 한 해를 정리하는데 좋을 것 같아 정리해보는 글. 설명은 왼쪽 위부터 순서대로.

나의 2018 best nine

#1
때는 라오스 방비엥을 여행하던 중이었다. 여기 온 사람들은 인스타그램에 뭘 올리면서 놀까 궁금해서 주변 사진들을 찾아봤는데 이곳이 똻! nam xay top view 라는 곳인데 농부가 나무를 깎아 길을 만든 것을 정부에서 허가해줬다고… 저 뷰를 보자마자 꼭 가고 싶어서 오토바이를 비싸게 빌려타고 방비엥을 달렸다. 한적한 시골길을 오토바이로 달리니 자유로움 그 자체! 도착한 뒤 산을 타야했는데 올라가는게 거의 수직이라 너무x10 빡셌지만 정상에서 보는 경치는 정말 최고였다.

#2
7월부터 피티를 받았다. 그동안 나쁜 습관 때문에 체형도 계속 안 좋아지는 것 같아 시작한 피티였는데, 기왕 시작한 거 제대로 해보자는 생각에 식단 관리도 엄청 잘 지켜가면서 했다. 술도 1주일에 맥주 한두 캔(허락 받음)으로 버티며 3개월을 보냈고, 첫 3개월을 무사히 마친 것을 축하하며 해방촌 ‘다모토리ㅎ’에서 막걸리 파티를 했다(허락 받음). 그리고 이 날 우산 분실 사건이…

#3
2018년에 처음으로 질렀던 스위치! 엔씨 다니는 친구를 통해 싸게 구입했다. 스위치 전용으로 나온 타이틀인 ‘젤다의 전설: 야생의 숨결’을 사람들이 워낙 극찬을 해대서 대체 어떤 게임인지 꼭 해보고 싶어 구매하게 됐다. 플레이 소감은 어떤 리뷰어의 말로 대신한다. ‘이건 훔쳐서라도 해봐야 할 게임이다’.

#4
비교적 최근에 올린 글이다! 디씨트레킹 친구의 소개로 알게 된 곳인데, 기존엔 수유에 있었다가 최근에 신설동으로 이사한 ‘즐거운 맛 돈까스’라는 곳이다(곽슐랭 2스타 예정). 히레까스를 주문해서 먹어봤는데 오… 촉촉하고 부드럽다. 다른 데서 돈까스를 먹을 때도 이곳에서 다시 한 번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5
피티 스튜디오 락커룸에서 찍은 사진이다. 트레이너님이 모티바 핑크 챌린지-지목 당한 뒤 48시간 이내에 운동하는 사진을 올리면 대한암협회를 통해 유방암 환자에게 기부금이 전달된다고-라는 것에 나를 지목해버려서 운동하는 사진을 찍어서 올렸다. 이런거 난 지목당할 일 없을 줄 알았어…

#6
날씨 좋은 8월, 디씨트레킹 멤버들과 한강을 걸었다. 하늘이 너무 멋진 날이었음.

#7
언제나 훌륭한 예술의 전당 앞의 ‘앵콜칼국수’. 오랜만에 갔더니 1층 인테리어가 싹 바뀌었더라. 1층에서는 의자와 테이블로 편하게, 2층에서는 옛날처럼 좌식 감성으로.

#8
라오스 여행 첫 날. 도착했으면 역시 현지 맥주를 마셔줘야지! 비어라오는 현지 음식과 궁합이 참 잘 맞았다.

#9
꽃다발 만드는 취미가 생긴 디씨트레킹 친구에게 할머니 드릴 꽃을 사보았다. 생각보다 너무 훌륭하게 만들어줘서 감탄! 다음에 또 꽃 살 일이 있으면 부탁하려고 했지만 부탁할 만한 기회가 잘 생기지 않았다…

Goodbye 2018, Hello 2019

#1

2018년 한 해도 지나고, 이제 2019년이 되었다. 2018년을 어떻게 보냈나 생각해보면 아쉬움이 많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한국 나이로 36살로 보냈던 2018년. 내년에는 37살이 된다는 생각에 사로 잡혀서 36살답게 한 해를 보내지 못하고 37이 된 것처럼 생각했던 때가 더 많았던 것 같다. 어쨌거나 이제 37살이 찾아왔다. 적어도 올해만큼은 작년처럼 내년이면 38이 된다는 생각에 사로잡히지 않고 온전히 현재의 나이를 즐기며 살고 싶다. 게다가 만 나이로는 아직 35! (더 이상 말하면 구차할 거 같으니 여기까지만… 만 나이 쓰자는 운동에는 응원을 보낸다.)

#2

오래된 카톡방을 정리하다가 옛 친구에게 오랜만에 메시지를 남겨 보았다. 골드미스로 살고 있나 했더니 그간 좋은 소식이 있었더라. 올해는 내게도 좋은 사람이 찾아오길! 이 소원은 해마다 다들 바라는거 같은데 여간 쉽지 않은 모양이다. 조급함 때문에 잘못된 선택을 하지만은 않길.

우산 분실 사건

Update

– 10/5 사건 발생

– 10/15 진행상황 업데이트. 연락시 누가 연락했는지에 대한 정보 추가.

– 10/16 사건 해결!

– 10/20 해결된 상황 업데이트 


단순 해프닝으로 지나갔으면 좋았을 일이, ‘사건’이란 단어를 붙이기에 아깝지 않은 일로 커져가고 있는 것 같다. 일의 흐름과 대응했던 방법을 기록으로 남겨보려고 한다. 시간순으로 정리할 예정이며, 추가되는 경우 상단에 이력을 남기고 글은 시간순으로 유지하려고 한다. 그럼 시작!

#0 사건의 시작 – 토요일 새벽 2시 30분경

금요일 밤이었다. 회사 동료들과 모처럼 술자리를 가진 날이었다. 비오는 날이었기에 막걸리 집에서 1차를 즐겁게 마무리 하고, 2명이서 근처로 2차를 갔다. 내가 사용하던 우산은 가격대가 있는(판매가 95,000원) 우산이었기 때문에, 잘 챙기기 위해 우산을 자리로 가져가 내 옆에 두었다(1차로 갔던 곳에서도 옆에 두었고, 잘 챙겨나왔다). 메뉴판과 물을 받는데 점원이 우산을 앞쪽에 보관해 두겠다고 했다. 사람이 막 붐비는 상황도 아니었고, 또 보관해주겠다니 순순히 우산을 맡겼다. 두어 시간이 지나자 마감시간이 되어 결제를 먼저 했고, 조금 더 앉아 있다가 다시 한 번 마감시간이 되었다는 말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밖으로 나가려는데 내 우산은 있어야 할 곳에 있지 않았고, 점원도 그 사실을 알아챘다. 연락처를 남겨주면 CCTV 확인 후 조치를 취해 주겠다는 말에 연락처를 남기고 가게의 우산을 하나 얻어 집으로 돌아왔다.

#1 첫번째 연락 – 나 -> 가게. 월요일 오후 8시경

주말이 지나 월요일 저녁이 되도록 가게에서는 연락이 오지 않았다. 가게 정보를 검색해보니 일요일이 휴무여서 시간이 모자랐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뭔가 그래도 연락이 있어야 하는것 아닌가? 이야기를 들은 동생의 성화에 네이버에서 찾은 가게 번호로 바로 전화를 걸었다.

우산 분실 때문에 연락을 했다고 하니 바로 알아채고는 죄송하다는 말을 연거푸 하였다. 어떤 손님이 그랬는지 참 곤란하게 됐다며 서로 적당한 위로의 말을 주고 받았다. CCTV를 확인해서 다시 찾아보긴 할텐데, 우산을 구매할 수 있는 링크를 보내주면 조치를 취해준다고 했다. 내가 가게 전화번호로 전화를 건 상황이었기에, 그럼 링크를 어떻게 보내드리면 될까요 물었더니 휴대폰 번호를 불러주려고 했다. 어차피 가게에 남긴 내 번호가 있으니, 그리로 문자를 보내주면 링크를 보내주겠다는 걸로 통화를 마쳤다.

우산을 원래 구매했던 곳은 품절이었지만, 공식 홈페이지에서는 아직 구매가 가능해서 양쪽의 링크를 보내주고, 배송받을 집 주소를 함께 보내주었다. 가게에서는 이때 우산의 가격을 처음 알았을 것이다. 사건 당시에는 나도 우산 가격을 정확하게 기억하는 상황이 아니었고, 나중에 다시 구매할 수 있는지 찾아보고 난 뒤에야 정확한 금액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링크를 보내주니 CCTV를 다시 한 번 확인해보겠다는 답장이 왔고, 혹시 다시 구매해서 배송해주게 되면 알려달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이 날의 대화를 마쳤다.

#2 두번째 연락 – 나 -> 가게. 목요일 오후 3시

화요일은 휴일이었고, 수요일은 평일이었다. 이틀이 지나 목요일 오후가 되었지만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진행 상황이 궁금해서 월요일에 문자를 주고 받은 휴대폰 번호로 어떻게 되고 있는지 알려달라는 내용의 문자를 남겼다.

#3 세번째 연락 – 나 -> 가게. 목요일 오후 8시 25분

저녁 시간이 되도록 답장이 없어 전화를 걸었다. 우산 때문에 연락 드렸다 말하니 영업시간이라 잠시 후에 다시 전화를 준다고 하였다. 잠시 후면 언제를 말씀하시는 거냐 물었더니 지금 영업중이란 말을 다시 한다. 그럼 영업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거냐 물으니 잠시 후에 다시 걸겠다는 말을 다시 한다. 대략적인 시간이라도 말씀 달라 하니 9시 전에 다시 연락 드리겠다고 해서 알겠다고 하고 기다렸다. 1분도 채 되지않아 바로 전화가 걸려오다가 벨이 한 번 울리고는 끊기길래, 실수로 걸린건가 하고 넘겼다.

20분 뒤에 다시 전화가 걸려왔고, 신호가 몇 번 울린 뒤에 전화를 받았다. 아까 내가 전화를 안 받아서 지금 다시 전화를 드렸다며 생색을 한 번 낸다. 그에 대해 별말 안하고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거냐 물으니, 보안업체에서 내일 방문해서 CCTV를 확인할 예정이니, 확인 후 연락을 주겠다고 했다. 그게 대략 언제쯤일지 물었더니 확답하지 못하길래 그럼 보안업체에서는 몇 시쯤 오기로 했냐고 물었다. 오후 5시쯤 오기로 했다는 말에 알겠다는 말로 통화를 마쳤다.


일단 여기까지가 현재까지의 상황이다. 날이 바뀌었으니, 이제 오늘 밤이 되면 사건이 벌어진지 1주일이 되는 날이다. 그동안 가게는 대체 무엇을 했던걸까? 보안업체와의 일정 조율이 늦어져 내일이 되어야 업체가 방문할 수 있었다? 만약 애초에 그런 상황이었으면 그런 사실을 나에게 인지시켜야 했다. 1주일이 되도록 내가 들은 것은 조치를 취하겠다, CCTV를 확인하겠다 는 말은 있었지만 조치를 취했는지, CCTV는 확인 했는지 그 어떤 것도 듣지 못했다. 답답해진 마음에 먼저 연락을 한 뒤에야 정보를 들을 수 있었고 그 과정도 깔끔하지는 못했다.

CCTV를 확인한 후에는 어떻게 될 것인지 예상해 보았다.

가정 1. 우산을 가져간 사람을 찾았고, 가게에서 아는 사람이다.
=> 아는 지인이 가져갔다면, 그 사람에게서 우산을 받고, 그걸 다시 나에게 보내주는 과정이 필요하다. 상당히 시간을 잡아먹을 것 같은 일이다. 가져간 사람으로부터 우산을 받는데 또 시간이 하염없이 걸리기 시작하면 스트레스가 또 심해질 것 같다.

가정 2. 우산을 찾지 못했다. 모르는 사람이 가져갔거나 확인할 수 없었다.
=> 가게에서 우산을 다시 구매해서 배송해 주거나, 우산의 금액을 입금해주는 해결책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개인적으로는 이게 가장 빨리 해결되는 기분이 들 것 같다.

가정 3. 시시비비를 따지기 시작한다.
=> 정말 피곤해지는 상황이다. 내가 잃어버린 우산이 그 우산이 맞는거냐부터 시작해서 온갖 트집이라거나, 딴지를 거는 상황이다. 제일 피하고 싶은 상황이다.

기분 좋게 하루를 마무리 한 곳에서 이런 일이 생기고, 또 질질 늘어지고 있는 것이 영 불편하다. 아무쪼록 깔끔한 편에서 마무리 되기를…


#4 네번째 연락 – 가게 -> 나. 금요일 오전 10시 40분경

오전에 왠일로 먼저 연락이 왔다. ‘카드사에 말해두었다. 이번주까지 늦어진다면 계좌번호를 알려달라’는 내용이었다. 카드사에 대체 뭘 말해두었다는건지 궁금했다. 보안업체와의 확인은 5시라고 하지 않았던가? 무슨 의미인지 물어보았다. “카드회사에 정보를 받아야하는 부분이 있으니까요.”라는 답이 왔다. 재차 물었다.

나: “그러니까 가져간 사람을 찾았고, 그 사람이 결제한 정보로 카드회사에 문의했다는거죠?”
가게: “네네”

무슨 설명을 이렇게 하나… 어쨌든 이번주까지 뭔가 해결될 조짐이 보이니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카드사에서 고객 정보를 쉽게 주려나?란 생각에 늦어질 것을 대비해서 계좌번호를 미리 알려주었다. 뭔가 업데이트 되는 상황이 있으면 알려달라는 말과 함께.

#5 다섯번째 연락 – 나 -> 가게. 월요일 오후 6시

입금된 내역도 없고, 연락도 없다. 진행상황을 묻는 문자를 남겼다.

#6 여섯번째 연락 – 나 -> 가게. 월요일 오후 8시 30분

문자에 대한 답장이 없어 전화를 걸었다. 주말이 껴있어서 카드사에서 확인이 늦어진다며 내일까지 알려준다 하였다. “아니 내일이면,” 하는데 “내일 점심까지 알려 드리겠습니다”하며 빠르게 마무리 한다. 욱하는 마음 한 번 참고 끊었다. 내일 대체 뭐라고 할지 궁금하다. 근데 아니 대체 왜 매번 내가 연락해야하는건데?


#7 일곱번째 연락 – 가게 -> 나. 화요일 오후 12시 13분

점심때 연락을 준다더니 맞춰서 연락이 왔다. “안녕하세요” 라고만 왔길래 무슨 말을 하려나 하고 기다렸더니 말이 없다. 내가 답장을 하자 그제서야 내용을 이어갔다. 카드사를 통해 정보는 받았지만 연락이 되지 않는다며, 내게 입금하고 연락을 준다고 했다. 드디어 해결되나 싶다가도 언제 입금해주려나 싶어 바로 입금해주냐고 물었다. 그렇다는 말에 잠시 기다려봤는데 소식이 없다. 미리 알려준 계좌로 95,000원을 입금하면 된다고 문자를 보냈다.

#8 여덞번째 연락 – 나 -> 가게. 오후 2시 50분

점심을 먹고 회사일을 하다가 잠시 조회해봤는데 아직 입금되지 않았다. 바로 입금해준다고 하지 않았나? 아직 입금되지 않았는데 언제 할 예정인지 문자로 물어보았다.

#9 아홉번째 연락 – 나 -> 가게. 오후 6시 44분

마지막까지 진상이다. 이젠 화도 났다가 안 났다가 한다. 저녁 시간까지 입금도, 소식도 없어 전화를 걸었다. 보안카드를 안 가져왔다며, 오늘 안으로는 꼭 입금하겠다 한다. 기대가 없어서 그런지 화도 안 나서 알겠다고 했다. 답장을 못 해 미안하다는 말을 하려는 것 같았다가 내가 그냥 알았다 하니 말을 중단하고 통화를 마쳤다.

#10 열번째 연락 – 동생 -> 가게. 7시 15분경

동생이 아직도 안 받았냐며 내게 물어보다가, 내가 좋게좋게 얘기하니까 질질 끈다며 동생이 직접 전화를 걸었다. 옆에 있지 않아 그 사실을 몰랐다가, 통화가 끝나고서야 나에게 카톡으로 알려줬다. 동생이 전화해서 대판 싸웠다고 했다.

자세한 과정은 모르겠지만 동생이 중간에 말을 끊고 전화를 끊자 다시 전화를 걸어와서는, 기분 나쁘게 왜 끊냐, 소송 걸려면 걸어라, 신고하려면 해라, 수단 방법 안 가리고 배상 안 할 책임 찾을거다, 그냥 가만히 기다리면 줄텐데 왜 그러냐 이런 식의 말들을 했나 보다. 아니 내가 그동안 다 참아줬는데 동생이 한 번 성낸 걸로 이런 말들을 할 처지인가? 다신 상종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11 해결!! – 오후 7시 21분

드디어 가게에서 입금을 해줬다. 동생이 전화한 후 바로 넣어주니 역시 진상을 부려야 일이 빨라지나란 생각을 안 할 수는 없더라.


아오 지긋지긋 했다. 사건 당일 우산을 잃어버린 것 외에는 나름 괜찮은 시간을 보냈던 곳이라, 이번 일이 잘 마무리 되면 다시 찾아갈 생각도 있는 곳이었다. 근데 연락처를 남겨도 연락이 없어, 문자를 남겨도 답장이 없어, 해준다는 일도 소식이 없었다. 그나마 전화는 그래도 잘 받아서 다행이었다. 이 과정을 지켜본 내 주변인들은 그 가게는 절대 안 간다며 치를 떤다. 무슨 사회 초년생도 아니고 대응을 이딴 식으로 하는지 원… 결국 씁쓸한 뒷맛이 남는 마무리였다.

[영화]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

이 영화에 대해서 알게 된 것은 우연이었다. 이야기는 been이란 앱에서부터 출발한다.

been은 그동안 다녔던 여행지를 기록하는 앱인데, 여행했던 국가들을 기록하면 세계의 몇 %를 여행했는지, 유럽은 몇 %인지, 아시아는 몇 %인지 등을 알려주는 앱이다. 그 리스트에 바로 ‘건지 섬’이 있었다. 건지 섬이 대체 어디지?하고 찾아봤더니 영국 아래에 있는 영국령의 작은 섬이었다. 그걸 보더니 옆에 있던 엄마가 “아, ‘건지 무슨무슨 북클럽’이라는 영화에서 나왔던 건지가 바로 여기였구나”라고 말한 덕분에 영화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검색을 통해 이 영화의 정확한 이름이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이란 걸 알게 되었고, 원작 소설이 있다는 것을 알았으며, 이 영화가 넷플릭스에 올라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망설일 필요 없지. 바로 넷플릭스 시청 ㄱㄱ.

영화엔 익숙한 얼굴들이 있었다. <베이비 드라이버>의 여주인공 릴리 제임스가 여기서도 주연을 맡았고, 남주인공은 낯이 익다 싶었는데 <왕좌의 게임>에서 다리오 나하리스 역을 맡은 배우였다! 모두 좋아하는 배우들이어서 그런지 더 즐겁게 영화를 감상했던 것 같다.

영화를 한 마디로 말하자면 21세기 오만과 편견? 영국이란 배경과 로맨스 요소 때문에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것 같다. 건지 섬은 2차대전 때 영국에서는 유일하게 독일군의 점령을 받은 지역인데, 이로 인해 펼쳐지는 이야기에서는 우리나라의 역사가 생각나기도 했다. 우리나라로 배경을 바꿔서 영화를 만들어도 될 것 같은? 그럼 건지 섬은 울릉도 정도로 바꾸면 딱일 듯.

영화는 영국의 역사와 인물들의 이야기를 파고 들며 흥미진진하게 흘러갔다. 북클럽 회원들 간의 관계와 과거에 어떤 일이 있었던걸까를 조사하는 과정이 영화를 지루하지 않게 해주었던 것 같다. 원작 소설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니 편지를 주고 받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너무 두껍지 않으면 한 번 도전해 봐야겠다.

★★★

미완성의 사람

완성된 사람이 되지 말자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서 영화도 잘 보고,

혼자서 밥도 잘 먹고,

혼자서 외롭지도 않고,

그런 사람은 누군가가 필요하지 않다.

함께하는 누군가로 인해 완성되는 사람,

그걸 위해 부족한 부분을 살짝 남겨 놓기로.

[책] 만약은 없다. 남궁인

남궁인 저자에 대해 알게 된 것은 이 글 덕분이었다. 몇 개의 글을 더 읽으며 이분이 응급의학과에서 일하고 있는 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바쁜 일과 속에서도 업데이트 되는 블로그가 신기했고, 술술 읽히는 문체에 감탄했다. 그러던 중 출판 소식을 알게 되었던 것을 이제서야 읽었다. 어느새 두 번째 책도 나왔더라.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었다. 전반부는 죽음에 관하여, 후반부는 삶에 관하여. 책을 다 읽은 뒤 들은 생각은 이 구성에 대해 아쉽다는 생각이었다. 책 속에 담긴 죽음들은 꽤나 묵직했고, 삶은 다소 가볍게 읽을 수 있었다. 전반부는 묵직한 내용들을 연속해서 지나와야했기에 다소 부담이 있었다. 죽음과 삶을 교차하는 방식이었다면 좀 강약조절이 되지 않았으려나.

책은 그간 저자가 목도한 삶과 죽음의 모습들을 담담한 마음으로, 유려한 문체로 풀어놓았다. 오늘도 응급실 안팎에서 삶과 죽음과 싸우고 있는 모든 분들에게 응원을 보낸다.

봉황당을 다녀오다

서울 리버풀 팬들의 성지, 봉황당을 다녀왔다. 원래 콥(The Kop, 리버풀 FC 서포터즈를 부르는 말)은 아니지만, 경기 일정에 토트넘 vs. 리버풀 20:30 을 보자마자 이 경기는 왠지 여기서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홍대까지 발걸음을 옮겼다(잠실에서 리버풀 레전드들과 함께 경기를 볼 수 있었다는걸 안 건 나중의 일 ㅠㅠ).

경기가 시작되기 3시간 전인 5시반쯤 미리 홍대에 도착했다. 인원이 꽉 차면 입장이 제한된다는 말에 1.5~2시간 쯤 전에는 입장해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만화방에서 1시간 정도 보내고, 약간 길을 헷갈리고 나니 7시쯤에야 입장할 수 있었다.

리버풀을 떠올리게 하는 다양한 아이템들이 입장하기 전부터 설레이게 만든다. 벌써부터 테이블석은 꽉 찼고, 경기가 중계될 프로젝터 화면 앞도 거의 만석이다. 직원이 간단히 이곳의 시스템을 설명해주었다.

  • 입장료: 15,000원 – 맥주 2병 제공. 한 병은 바로 내주고, 나머지 한 병은 쿠폰과 교환
  • 스탬프: 팔에 찍어주는 스탬프로 추후 입장료 없이 재입장이 가능하다.

7시반 정도가 되자 더 이상 발디딜 틈이 없어지고 입장 제한이 시작되었다. 직원에게 물어보니 테이블석에 앉은 사람들은 오픈시간(18:00) 전부터 가다린 사람들이라고.

브릿팝 콘서트가 상영되던 화면은 8시 30분이 가까워지자 스포츠 채널로 변경되고, TV 화면을 제외한 모든 조명이 꺼졌다. 이제 드디어 경기가 시작되려는 순간이다. 아시안게임을 뛰고 온 손흥민은 역시나 선발 명단에서 제외되었고, 리버풀의 선발 라인업이 발표되는 순간 여기저기서 박수가 나온다. 그래 여긴 리버풀펍이지.

손흥민이 나올 때 야유를 들을 수 있는 곳은 서울 내에서는 이곳밖에 없을거다 ㅋㅋㅋ. 경기는 초반 세트피스로 득점에 성공한 리버풀이 리드를 잘 지켰고, 토트넘도 후반 손흥민의 투입과 함께 승점을 잃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결국 2:1로 리버풀의 승리로 종료되었다. 손흥민의 폼이 썩 괜찮은걸 보니 다가올 챔피언스리그 경기도 기대가 된다. 리버풀의 단단함은 역시 이번 시즌 우승을 노리는 팀 다운 면모가 느껴졌다.

경기가 끝나고 사람들이 우르르 빠져나간 뒤 여유롭게 마저 펍을 둘러보고 나오는 것으로 오늘의 일정을 마무리 지었다. 다음엔 테이블석을 노려봐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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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박과 탈압박

회사 이야기지만 축구 이야기로 시작해본다.

현대 축구에서 중요한 키워드 중 하나는 압박과 탈압박일 것이다. 상대방이 원하는 플레이를 하지 못하도록 강하게 압박하는 팀과, 그것을 이겨내거나 흘려내며 원하는 플레이를 유지하는 팀의 싸움. 탈압박하는 쪽에서는 특히 미드필더들의 탈압박 능력이 중요하다. 상대 선수가 적극적으로 달려들고 몸싸움을 걸어오는 순간에도, 자신의 공을 잘 지키고 원하는 곳에 패스를 보낼 수 있는 능력 말이다.

편안한 상태에서 원하는 곳에 정확하게 공을 보내는 능력은 프로 수준의 선수들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진정 위대한 선수들은 아무리 거친 환경에서도 자신이 원하는 플레이를 할 수 있다. 편안할 때나 폭풍이 칠 때나 자신의 플레이를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이 진정한 탈압박 능력이 아닐까 싶다.

이제 운동장에서 사무실로 시선을 옮겨보면, 여기도 비슷한 상황이 펼쳐진다. 여유있는 일정과 자금 속에서 제품을 만드는 일은 매우 이상적인 상황이지만, 그런 상황은 쉽게 찾아오지 않는다. 오히려 촉박한 일정 속에서 계획은 계속 바뀌고, 그 와중에도 일정한 품질을 유지해야 하는 상황이 더 많을 것이다. 이 단계가 힘들지 않은 사람은 없다. 하지만 이 압박을 이겨내고 자신의 플레이를 유지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의 가치는 결국 누구나 알 수 밖에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