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와 시

비 오는 날 읽기 좋은 시를 알게 되었다. 앞으로 비오는 날마다 이 시들이 생각날 것 같다.

1.

이정하 – 낮은 곳으로

낮은 곳에 있고 싶었다
낮은 곳이라면 지상의
그 어디라도 좋다

찰랑찰랑 고여들 네 사랑을
온 몸으로 받아들일 수만 있다면

한 방울도 헛되이 새어 나가지 않게 할 수 있다면

그래,
내가 낮은 곳에 있겠다는 건
너를 위해 나를 온전히 비우겠다는 것이다

잠겨 죽어도 좋으니
너는 물처럼 내게 밀려오라

2.

김남조 – 빗물같은 정을 주리라

너로 말하건 또한
나로 말하더라도
빈 손 빈 가슴으로
왔다가는 사람이지

기린 모양의 긴 모가지에
멋있게 빛을 걸고 서 있는 친구
가로등의 불빛으로
눈이 어리었을까

엇갈리어 지나가다
얼굴 반쯤 그만 봐버린 사람아
요샌 참 너무 많이
네 생각이 난다

사락사락 사락눈이
한 줌 뿌리면
솜털같은 실비가
비단결 물보라로 적시는 첫봄인데
너도 빗물같은 정을
양손으로 받아주렴

비는
뿌린 후에 거두지 않음이니
나도 스스로운 사랑으로 주고
달라진 않으리라
아무것도

무상(無償)으로 주는
이름 없는 벗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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